PAINTINGS
CRITIQUES
1회 개인전
'도전하는 사람들'
1999.02.20-02.28 수원 갤러리 그림시
도전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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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의 그림은 사람을 그린 것이다. 그러나 어떤 그림이나 마찬가지이듯 그것은 또한 삶을 그린 것이다. 그런데 젊은 작가들의 경우, 삶은 아직 추상적이고 모호하나 매우 격렬하고 열정적인 무엇으로 생각되기 때문에 과잉반응을 보이거나 섣부른 결론을 내리려고 하는데, 그 결과는 너무 어둡거나 너무 사춘기 취향이거나 그렇다.
이윤기의 그림이 일종의 놀라움으로 다가온 이유는, 이 젊은 작가가 보여주는 삶에 대한 성찰방식이 참으로 성숙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볼 수 있는 범위만큼에서 최대한 충분히 보려고 하는 노력, 답이 아니라 의문의 내용을 정확히 알고자 하는 태도, 현재의 자신이 가장 자신있게 도전할 수 있는 종목?을 볼 줄 아는 안목, 섣부른 좌절이 아닌 가식없는 열정, 이런 요소들을 만들어 내는 그의 작업 세계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림 앞에서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그가 최근에 한 작업들을 보면, 현실과 상상(꿈)의 관계에 대한 것, 현실에 대한 묘사, 자화상을 비롯한 인물, 운동하는 사람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그림이 갖추고 있는 형식적 측면에서의 분류이고 결국 모두 그가 생각하는 삶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집중적으로 보여지는 “운동하는 사람들” 시리즈는,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자화상이라 부를 수 있는 인물군상 시리즈이다.
스포츠는,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위해 피나는 훈련을 하고 승부를 겨루고 승리와 패배의 명확한 판단을 받는다는 점에서, 사람들에게 큰 교훈을 주는 하나의 잠언이다. 이러한 스포츠는 현대자본주의 사회에서 스포츠라는 잠언은 ‘하면 된다!(개인적으로) 노력하는 뭐든지 할 수 있다! 꿈은 실현될 수 있다!는 뜻으로 굳어졌다.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상품이자 경품이며 그런 생활방식이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이제 스포츠라는 잠언은 거대한 기계속의 부품처럼 따로 떼어볼 수 없는 복잡한 성격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윤기가 그리는 ‘운동하는 사람들’이 복잡한 메커니즘을 온전히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오히려 그는 ‘노력과 도전의식’이라는 스포츠의 건강하고 긍정적인 면을 더욱 부각시키려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그는 스포츠의 다른 면면들과 복잡한 이면들을 이미 느끼고 있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되는데. 그것은 그가 이미 세상을 단순하게 파악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림의 형식적인 측면에서도 복잡한 무언가를 향해 자꾸 파들어 가는 ‘선’을 썼는지도 모른다. 그의 그림에서 자주 사용되는 수많은 선은 바로 이러한 단순하지 않은 모든 형상들에 대해 치열하고 집요한 질문을 해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이윤기의 ‘운동하는 사람들’을 보면 현실의 처절함고 비장함을 느끼게 된다. 자주 담담하게 그렸는데도 말이다. 이러한 놀라운 현실 환기력과 예술적 쾌감을 젊은 작가에게서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드문 기쁨이다. 앞으로 그 긴강잠과 성숙함을 계속 유지하기를 빌어마지 않는다.
1999.2.20 큐레이터 오 혜주